SK·FI 원매자들 '눈치싸움' 지속될 듯
인프라 딜만 북적…자취 감춘 SI 빅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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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내 M&A 시장의 ‘빅딜’로 주목받던 SK실트론 매각 거래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원매자 측과 SK 측의 기업가치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SK 측도 기업가치 산정이 부담으로 작용하면서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하반기 대기업발 조 단위 거래가 자취를 감출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2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그룹이 SK실트론 매각을 추진 중인 가운데, 기업가치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사실상 일부 원매자와의 협상은 중단된 상태로 파악된다. 앞서 복수의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SK실트론 인수 검토에 나섰고, 국내 PEF인 한앤컴퍼니가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는 관측도 나왔다.
SK 측은 “매각 절차를 진행 중”이라는 입장인 가운데, 기업가치와 관련된 이견이 장기화되면서 연내 거래가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와 달리 절차가 지연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SK그룹 내부 사정도 변수로 거론된다. 애초 기대했던 기업가치와 달리 실사 과정에서 미국 등 일부 해외 자산의 평가액이 과거 산정치에 비해 낮아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그룹 차원에서 매각 작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매각이 성사되려면 자산가치 산정이 보다 명확히 이뤄져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최고경영진까지 보고가 이어지면 일부 인사들의 입장이 애매해질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번 거래 대상은 SK가 보유한 지분 51%와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으로 묶여 있는 지분 19.6%를 합친 경영권 지분 70.6%다. SK 측이 기대한 SK실트론의 기업가치는 약 5조원 수준으로 거론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SK㈜가 SK실트론 지분 인수와 관련한 사익편취 의혹에서 벗어나면서 SK실트론 매각도 속도를 낼 것이란 기대가 나오기도 했다. 검찰은 지난달 초 실트론 사익편취 의혹과 관련해 공정거래법 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를 받는 최 회장과 SK㈜에 대해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매각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SK실트론의 올해 상반기 실적은 전년 대비 악화했다. SK실트론은 올해 상반기 연결 기준 매출액 9802억원, 영업이익 91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은 0.13%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17.82% 줄었다. SK실트론의 올 상반기 별도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7.99% 늘어난 2127억원을 기록했다.
연결 실적 부진은 SK실트론CSS가 지분 100% 보유한 자회사인 SK실트론USA의 실적 부진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된다. SK실트론CSS는 SK실트론이 2019년 미국 듀폰(DuPont)으로부터 4억5000만달러(한화 약 6100억원)에 SiC 웨이퍼 사업을 인수하면서 설립한 법인이다. SK실트론USA는 올해 상반기 매출액 119억원, 영업손실 1208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은 76.25% 감소했고, 영업손실은 두 배 넘게 증가했다.
SK 측은 해외 투자자와의 협상 가능성도 열어뒀지만, 규제 허들로 성사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관측된다. SK실트론이 보유한 국내 유일의 12인치(300mm) 실리콘 웨이퍼 생산 기술은 국가핵심기술이기 때문에 외국계가 경영권을 인수한다면 산업통상자원부의 심사를 받아야 할 전망이다.
FI 입장에서는 인수 후 재매각 계획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SK실트론이 규모가 큰 조 단위 매물이라는 점에서, 국내에서 SK실트론을 인수할 전략적 투자자(SI)는 제한적이다. 매물에 관심이 있는 국내 FI들은 이번 거래에서 매물을 검토하고 발을 뺀 경우가 다수다. 최근 국내 대기업들은 대내외 불확실성 때문에 규모가 큰 투자를 자제하는 분위기고, 특히 제조업은 규제 등 불확실성이 더 높아 투자 시계가 멈춰 있다는 평이다.
하반기 딜 클로징 가능성이 거론되던 SK실트론마저 불투명해지면서, 업계에서는 하반기 대기업발 조 단위 거래는 자취를 감출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펀딩을 마친 대형 PEF들이 투자 매물을 계속 검토하고 있지만, PEF 간 거래인 세컨더리 딜도 밸류에이션 문제 등으로 거래가 쉽지 않은 분위기다. MBK파트너스를 비롯한 대형 PEF들도 보유하고 있는 다수의 대형 포트폴리오 투자 회수가 지연되고 있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규제 강화로 중견기업 매물은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데, 수천억원대 거래는 이어지더라도 조 단위 규모의 딜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그나마 규모가 있는 거래들은 거의 인프라성 거래고, 대기업들은 비용 효율화를 중시하는 상황이어서 전략적 투자자(SI)의 대규모 인수는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