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지는 법제화에...금융지주 만난 서클, 협력보단 '마케팅' 집중
입력 2025.09.09 07:00
    코인 곁눈질
    법제화 공백 속 국내 구체화 논의 '뒷걸음'
    지난달 방한한 서클, 국내 금융사들과 회동
    USDC 네트워크 앞세워 시장 선점 노려
    협업 지연 땐 글로벌 사업자에 주도권 빼앗길 수도
    • 늦어지는 법제화에...금융지주 만난 서클, 협력보단 '마케팅' 집중 이미지 크게보기

      스테이블코인 법제화가 지연되면서 글로벌 발행사 서클(Circle)이 국내 금융지주들과의 만남에서 구체적인 협력 방안보다는 자사 결제 네트워크 등 마케팅에 치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제도 정비가 늦어질 경우 한국 금융권이 글로벌 사업자에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방한한 미국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서클의 히스 타버트 사장은 국내 금융지주 및 주요 은행 수장들과 만나 USDC 기반 글로벌 결제 네트워크(CPN·Circle Payments Network) 활용 방안을 주요 의제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서클은 서클에서 출시한 레이어1 블록체인인 아크(Arc)를 한국 기관들이 활용할 수 있는지 여부에도 관심을 기울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아크는 이더리움에서 USDC를 전송할 때 이더리움 대신 USDC로 수수료를 낼 수 있는 블록체인이다. 

      서클은 이번 방한에 앞서 국내 일부 금융사들과 화상회의를 진행하고, 한국어 명함까지 준비해 교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시장에서의 현지화를 위한 노력이 눈에 띄었다는 설명이다. 

      국내 은행권도 전체 스테이블코인 시장 점유율 약 24%를 차지하는 서클과의 협력 가능성에 주목해 왔다. 히스 하버트 사장은 이번 미팅에서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를 비롯해 신한금융, KB금융, 하나금융, 우리은행 등 주요 금융지주 및 시중은행 수장들을 연이어 만났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국내 은행에서 제안한 스테이블코인 관련 협력 아이템에 대해 서클 측이 열려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자리"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만남에서 실제 대화 내용은 협력보단 서클 측의 네트워크 및 결제망 '홍보' 성격이 강했단 평가다. 국내 금융권이 기대한 원화 스테이블코인 등과 관련한 공동 사업 모델 논의는 뚜렷한 진척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법제화 공백이 이어지면서 스테이블코인 관련 협업 논의를 구체화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 때문이란 해석이다. 현재 국회에는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안이 4건 발의돼 있지만 본격적인 심의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와 유통 구조, 자금세탁방지(AML) 규제 적용 범위 등을 두고 업계와 금융당국 사이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상태다.

      디지털자산 기본법 역시 1단계 법안이 지난 6월 발의됐지만,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발행·결제 분야를 다루는 2단계 입법은 답보 상태다. 이 때문에 국내 금융권은 글로벌 사업자와의 협력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구체적 사업 모델로 발전시키는 데는 제약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법제화가 지연되는 사이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의 국내 행보는 빨라지고 있다. 이러자 협력 논의가 자칫 '공동사업'이 아닌 '주도권 내어주기'로 귀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별도로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한국 시장에서 먼저 뿌리내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에서 서클 결제 네트워크가 실제로 쓰이기 시작하면, 매스 어돕션(대중 채택) 단계에서 서클이 선점 효과를 가져가 주도권이 넘어갈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국내 금융지주 및 은행들은 법제화 공백 속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물밑 탐색에 나서고 있다. 하나은행은 서클과 선제적으로 스테이블코인 관련 업무협약(MOU)를 체결했고, 주요 은행들은 사단법인 오픈블록체인·DID협회에 참여해 공동 전선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