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성 700억'·'폭싹 500억' 제작비 치솟지만…흔들리는 K-드라마 경쟁력
입력 2025.09.17 07:00
    취재노트
    국내에선 수백억원 투자 감당 어려워
    해외자본 찾다보니 제작비는 고공행진
    배우 출연료·제작 비용 불균형 심화해
    "언제까지 한국 투자할까" 번지는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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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디즈니플러스가 10일 공개한 텐트폴(핵심 대작) 시리즈 ‘북극성’의 총 제작비는 700억원 수준으로, 한국 드라마 역사상 최대 제작비다. 디즈니플러스가 한국 시장에서 존폐 위기까지 몰리면서 대규모 투자를 통해 반전을 시도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무빙’에는 650억원을 투자했다.

      이처럼 글로벌 OTT들이 ‘K드라마’에 투자를 늘리면서 제작비도 고공행진하고 있다. 올 상반기 넷플릭스 흥행작인 ‘폭싹 속았수다’도 제작비가 500억원에 달해 화제가 됐다.

      해외 자본의 투자가 늘어난다는 것이 ‘K드라마’의 위상이 올라감을 증명하는 점도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 국내 콘텐츠 업계에서는 기대감보다는 오히려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갈수록 드라마 제작 편수가 줄어드는 점을 고려하면 시장 내 불균형이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에 따르면, 방송 또는 공개 시점을 기준으로 국내 방송사와 OTT의 드라마는 2022년 135편에서 2023년 123편으로 줄었다. 2024년에는 약 100편 수준으로 감소한 것으로 파악된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드라마 편성을 대폭 줄인 지 오래고, 그나마 투자가 이뤄지던 토종 OTT인 티빙, 웨이브의 오리지널 드라마 편수도 줄어들고 있다.

      한편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OTT의 한국 콘텐츠 제작은 늘어나는 추세다. ‘히트작’을 내는 것이 구독자를 유지하고 새로 유입하는 데 중요하기 때문에 한 작품에 수백억을 투입하는 것이 다반사다. K콘텐츠가 글로벌에서도 좋은 성적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글로벌 OTT 입장에서는 수백억 수준의 투자는 ‘남는 장사’라는 평가다.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는 제작비 전액을 사전에 지급하는 방식이라 전통적인 방송 드라마 형식과는 다르다. 사실상 제작사는 ‘제작 용역’을 수행하는 성격에 가깝고, 드라마가 흥행하든 실패하든 추가 수익 배분 구조는 거의 없다.

      만약 ‘오징어 게임’처럼 대히트를 친다면 다소 아쉬울 수 있는 구조지만, 제작사들 입장에선 이들 말고 제작에 들어가기도 전에 수백억을 투자할 투자자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도 희박한 것이 사실이다. ‘폭싹 속았수다’의 경우에도 국내 OTT들과 제작 및 배급을 논의했지만, 500억원 수준의 제작비를 감당할 국내사는 찾기 어려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다 보니 제작사들은 아예 처음부터 제작비를 대폭 올려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다. 늘어나는 제작 비용을 고려하면 어차피 투자를 받을 수 있다면 제작비를 크게 책정하는 것이 나은 상황이기도 하다.

      ‘글로벌 히트작’을 낼 수 있는 배경에는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점도 크다. ‘케이팝데몬헌터스(케데헌)’의 초대박 이후 “왜 국내에선 케데헌 같은 작품이 못 나올까”라는 지적도 있지만, 냉정하게는 “케데헌이 국내 OTT에서 방영됐다면 이런 인기를 끌었겠나”라는 평이 더 많다.

      문제는 높아진 제작비가 모두의 이익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점이다. 제작사들은 넷플릭스의 ‘간택’을 받기 위해 우선 ‘간판’으로 내세울 배우를 세우는 일이 먼저다. 넷플릭스 입장에서도 국내든 해외든 인지도가 높은 배우가 출연한다면 흥행 확률을 높일 수 있으니 나쁠 게 없다.

      이렇다 보니 배우 출연료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디즈니플러스의 ‘북극성’은 전지현·강동원 두 톱스타가 주연을 맡았고, 이들의 회당 출연료가 3~4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넷플릭스의 ‘폭싹 속았수다’ 아이유·박보검 두 주연 배우의 회당 출연료는 각 5억원에 달해 화제가 됐다. 전체 16부작임을 고려하면 두 주연 배우 개런티만 총 160억원이 들어가는 셈이다.

      물론 전반적으로 배우진의 출연료도 높아졌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주 52시간 적용 등으로 제작팀 외주가 분산되면서 결국 분배되는 수익 수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다. 갈수록 정교함이 요구되는 CG 작업 등에도 비용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그나마 대형 제작사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고, 중소형 제작사들은 늘어나는 제작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가 다수다.

      ‘K’가 붙은 콘텐츠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언제나 더 비용을 줄일 방법을 찾기 마련이다. 벌써부터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들이 일본이나 동남아 콘텐츠 시장 문을 더욱 두드리는 분위기가 전해진다. 일본의 경우 배우 출연료가 ‘톱급’이라도 방송사 드라마의 경우 회당 500만원 수준에 그치기도 한다.

      그나마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사정이 나은 편이긴 하지만, 한국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다 보니 최근 일본 배우들이 출연료 인상을 요구하고 나서는 분위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의 주인공의 경우 회당 1천만엔(약 9300만원) 이상 받기도 하지만, 한국과 비교하면 적게는 3~4배, 많게는 10배가량 차이나는 수준이다. 한국에서는 드라마 회당 제작비가 20억원이 평균이 됐으나 일본에서는 10억원 수준이면 한 회를 제작할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 등 글로벌 회사들도 꼭 ‘K콘텐츠’일 필요는 없다 보니 계속해서 한국에 투자를 늘릴 수는 없을 것”이라며 “어느 정도 노하우가 쌓이면 자연스레 ‘가성비’ 시장을 찾게 될 것이고, 그랬을 때 글로벌 자본이 빠져나간 뒤 남는 건 붕괴된 제작 구조뿐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