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포스코이앤씨 나비효과…사과문 미리 써두고 사무직 공사현장 배치
입력 2025.09.17 07:00
    정부의 제재 압박에 건설사 신규 수주 검토 중단
    현장 공사 중단에 준공 앞둔 사업장 전전긍긍
    시공사 불참에 시행사 채무불이행 위험 확산
    잇따른 입주 연기 우려도…실수요자까지 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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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중대재해 기업을 강하게 질타한 이후 건설현장은 사실상 올스톱 상태다. 신규 수주 검토는 멈췄고, 사고 발생 시 '모든 현장 공사 중단' 방침이 자리잡으며 준공 지연과 입주 연기가 현실화하고 있다. 여파는 시공사와 시행사를 넘어 실수요자까지 번질 분위기다.

      이재명 대통령이 올해 다섯 번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에 강하게 비판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지난 8월 6일 이 대통령은 건설면허 취소, 공공입찰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과 징벌배상제 등 추가제재 방안을 검토해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

      이후에도 대형 건설사의 사고가 멈추지 않았다. 날짜별로 ▲8월8일 DL이앤씨 계열사 DL건설의 경기 의정부시 아파트 공사 현장 ▲9월3일 GS건설의 서울 성동구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 ▲9월4일 대우건설의 울산 북항터미널 현장 ▲9월6일 롯데건설의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올해에만 사실상 시공순위 8위권 이내 건설사 전부가 현장에서 사고를 겪었다. 작년까지 포함하면 삼성물산·현대건설 등 10대 건설사 모두의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한 셈이다.

      대통령의 포스코이앤씨 고강도 압박이 예상치 못한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포스코이앤씨가 유독 질타를 받는 배경에 혹여나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은 뒷전으로 밀린 상황이다.

      건설사, 신규 수주 검토 '올스톱'

      다수의 대형 건설사들이 올해 남은 시기는 신규 수주 검토를 멈춘 것으로 전해진다. 통상 건설사는 연말 무렵이면 연초에 세운 수주 목표를 대부분 달성한다. 수주를 하면 관리해야 할 사업장이 늘고 사고 가능성도 증가한다. 특히나 불확실성이 큰 올해에는 신규 수주 검토는 자제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보통 수주는 검토를 시작한 지 2~3개월 뒤에 이뤄진다.

      '전 현장 공사 중단' 등 대응이 매뉴얼화된 점도 눈에 띈다. 포스코이앤씨·DL건설·GS건설·롯데건설 모두 사고 이후 대표의 사과문과 함께 전 현장 공사 중단을 일제히 발표했다. 아직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건설사 중에서도 사고 가능성에 대비해 사과문을 미리 준비한 경우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공사를 중단한 건설사들은 준공을 앞둔 사업장에서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준공을 앞둔 사업장일수록 업무가 몰리고 바빠진다. 마감재, 인테리어 등 막바지 공정이 몰리며 준공검사 등 검수·점검의 과정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사가 중단된 현장은 안전점검을 거쳐 작업을 재개하기까지 약 3주가 소요된다. 책임준공 기한을 맞추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포스코이앤씨는 사고 이후 안전 관리를 위해 직무과 무관한 사무직도 현장에 보냈다"며 "DL건설이 대표의 사표 외에는 수리하지 않았음에도 현장 소장까지 사표를 내게 한 것은 정부를 의식한 조치"라 말했다.

      부도 위기 더 커진 시행사

      올해 수주 실적을 맞추지 못한 중소형 건설사도 정부의 메시지가 나오기 전까지 수주를 잠정 보류하기로 한 곳이 많다. 사업장이 본PF로 넘어가지 못하니 시행사는 브릿지론 단계에서 이자 비용을 계속 부담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 시장이 위축된 이후 은행을 포함한 금융사의 대출이 까다로워졌다. 보수적인 대출 기조에 브릿지론 연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시행사가 건설사를 확보하지 못하면 해당 사업장은 사업이 불가해진다. 시행사는 채무불이행 위험에 직면하고 동시에 다른 사업장에서 기한이익상실(EOD) 조항이 발동될 수도 있다. 최근 온라인 공공자산 처분 시스템 '온비드'에 올라오는 다수의 경공매 물건이 시행사가 브릿지론을 갚지 못해 생긴 물건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른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건설사가 상황을 지켜보자며 내년으로 수주를 미루면 시행사는 이자 비용을 지속 부담할 수밖에 없다"며 "착공한 사업장이더라도 사업 지연으로 완공이 늦춰지면 시행사가 지체보상금을 물어야한다"고 전했다.

      줄줄이 입주 연기…실수요자에게도 파장

      건설사의 관망 기조가 이어지면서 그 영향은 부동산 수요자에게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준공이 늦어져 수분양자의 입주 시기가 미뤄지면, 기존 주택에 입주하기로 한 다른 수분양자의 입주 계획도 같이 틀어지게 된다. 이미 6·27 대출 규제 시행 후 거래 건수가 크게 줄었으며 9·7 부동산 대책에 혼란은 이어지고 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포스코이앤씨뿐 아니라 여타 사고가 발생한 건설사도 제재를 내려야 한다. 하지만 시공사·시행사는 물론 건설 현장 근로자와 부동산 수요자까지 받을 파급을 고려하면 제재 강도를 쉽사리 결정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사고를 100% 막기 어려운 산업 특성상 정부의 고민이 길어질수록 전국에 공사를 멈추는 현장이 늘어날 것"이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