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공개정보 엄벌 나선 금융당국…내부통제 수요 기대감에 ‘포렌식 시장’도 요동
입력 2025.11.26 07:00
    House 동향
    농협금융, 법무법인 고용해 내부통제 검사 진행
    국내는 직원들 포렌식 거부감에 시장 위축되고
    감사에선 외감법에서 허용한 포렌식 조차 기업들 꺼려해
    다만 현 정부 주가조작 엄벌 방침에 따른 변화 가능성 거론
    미국·일본은 이미 ‘실시간 모니터링 기반 부정적발’ 대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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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금융당국이 미공개정보 이용 및 선행매매 등 불공정거래 근절에 고삐를 죄면서 금융권 전반에 긴장감이 퍼지고 있다. 회사 평판과 대주주 적격성까지 흔들릴 수 있는 사안인 만큼 금융사들은 사후 대응 중심의 기존 방식만으로는 위험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이에 따라 회계법인과 로펌을 중심으로 포렌식·부정적발(anti-fraud) 서비스 강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개인정보 규제 문제로 확산이 제한적이었던 과거와 달리, 최근 들어선 사회적·정책적 분위기가 바뀌면서 금융사뿐 아니라 대기업 전반으로 수요가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NH투자증권은 최근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가 참여하는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의 고강도 조사를 받았다. 합동대응단은 지난달 28일 NH투자증권 IB1부문 대표 집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해당 인물이 지난 2년간 공개매수 관련 미공개 정보를 반복적으로 직장동료·지인에게 전달했고, 관련자들이 약 20억원의 부당이익을 챙긴 정황이 포착됐다는 것이 당국 판단이다.

      금융권에선 “출장 중인 임원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는 건 사전에 확보한 증거력이 상당했음을 의미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국이 이미 내부 통화기록·계좌 흐름 등을 확보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규제 강도 강화 기조가 명확해지자 금융사들은 스스로 내부통제 체계를 재점검하며 리스크 차단에 나선 상황이다.

      NH투자증권은 ‘신뢰 강화대책’을 발표하고, 미공개 중요정보 접근 가능 임직원을 전사적으로 등록·관리하는 시스템 도입을 예고했다. 필요시 임직원 타사 계좌는 물론 미성년 자녀 계좌까지 확인하는 강도 높은 점검 체계가 적용된다.

      농협금융은 NH투자증권을 대상으로 ‘사익추구·미공개정보 이용 가능성’에 대한 특별점검을 진행 중이다. 자산 매매, 외부 용역계약, 투자 의사결정 과정 등 임직원 이해충돌 요소 전반을 들여다보고 있으며, 위반 적발 시 금융업 종사가 어려울 정도의 강력한 제재를 예고했다. 농협금융은 이 절차를 위해 외부 법무법인 2곳에 자문을 의뢰한 상태다.

      금융사들의 내부통제 강화 흐름 속에서 회계법인도 포렌식·부정적발 서비스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일PwC는 컨설팅 부문에서 부정조사 서비스 및 AI기반 금융사고 예방 및 모니터링 서비스를 제공한다. Risk Assurance 서비스 그룹에는 130여명의 전문가 그룹이 포렌식, 데이터 및 디지털 인증 서비스를  제공하며 해당 팀에는 공인회계사, 부정조사 전문가, 전직 검찰 수사관 등이 포진해있다. 

      삼정KPMG는 2002년에 국내 회계법인 최초로 포렌식 전문조직을 출범해 조사(Forensic Investigation), 자문(Forensic Consulting), 기술(Forensic Technology) 등 세 분야에 약 50여 명의 전문 인력이 포진해 있다.  딜로이트 그룹 경영자문 부문 포렌식 조직은 80명 이상의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전문 디지털 포렌식 솔루션을 활용하여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이처럼 대형 회계법인은 100여명의 전문가 그룹을 구축해 놓았지만 문제는 당초 대형 회계법인들의 주요 시장에 로펌과 군소 회계법인들이 참여하면서 경쟁강도가 높아졌다는 점이다.

      한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증권사 선행매매 등에 관해선 로펌이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다"라며 "회계법인들은 금융사 주식 거래와 관련해 부정적발 시스템 구축 등 사전예방 등에서 포렌식 서비스와 결합하는 서비스 확대를 고민중이다"라고 말했다.

      나아가 법적 근거가 있는 포렌식 조사 작업도 사실상 진행이 전무한 것으로 전해진다. 

      외부감사법 제22조에 따르면 회계법인들은 사실관계 확인을 통한 감사증거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포렌식 업무를 수행할 수 있지만 기업들의 반발과 감독당국의 무관심으로 인해서 사실상 진행이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터지고 나서 감사 부실에 대한 지적과 사후 조치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관계자는 "기업들이 달가워하지 않다 보니 외감법에 있는 감사증거 확보 조차도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라며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해서라도 금융당국에서 적극 나서줘야 하는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소 분위기가 바뀌는 것은 긍정적이다. 과거에는 “사생활을 들여다본다”는 이유로 고객사 임직원 반발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 정부가 주가조작 근절을 핵심 어젠다로 내세우면서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엄벌의지를 내비치면서 기업 내부에서도 “조직 보호를 위해선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이미 미국·일본 금융권에서는 AI를 활용한 실시간에 가까운 거래·시장 감시 시스템이 대중화 되어 있다. 

      미국 금융사는 SEC(증권거래위원회)의 강력한 ‘MNPI(미공개 중요정보) 관리 규정’을 따르면서, 글로벌 대형 IB를 중심으로 임직원 및 가족 계좌를 등록·모니터링하고, 사전 승인(pre-clearance) 없이는 특정 종목을 매수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부통제 장치를 운용한다. 일부 금융사는 딥러닝 기반 이상거래 탐지 솔루션과 디지털 포렌식 툴을 도입해, 내부자 거래 의심 패턴을 조기에 포착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선 ‘포렌식·부정적발 서비스’가 이미 하나의 독립 시장으로 자리 잡았고, 대형 회계법인과 대형 로펌은 이 분야 매출이 매년 증가세다.

      일본 금융시장 역시 내부정보 관리 규율이 매우 강력하다. 일본 FSA와 일본거래소 자율규제기구(JPX-R)는 금융상품거래법과 감독·점검 기준을 통해 내부정보 접근자에 대한 인사이더 등록 및 리스트 관리, 불공정거래 방지를 위한 거래 감시·내부통제 체계 구축, 시스템·접속 로그 등 전자 기록 보관 등을 사실상 필수 수준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를 충족하기 위해 일본 대형 금융사는 대부분 AI 기반 거래 감시 솔루션(NEC, Fujitsu 등)을 도입했고, 회계법인·컨설팅사는 내부조사·포렌식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확보했다.

      현 정부 기조가 유지된다면 한국도 기업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빅4 회계법인 관계자는 “과거에는 내부 직원 반발로 도입이 쉽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선 ‘조직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인식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로펌도 이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면서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미국은 SEC 규제가 워낙 강해 포렌식·부정적발 시스템이 없으면 영업을 할 수 없고, 일본 역시 FSA 중심으로 내부정보 통제가 매우 엄격하다”며 “한국도 이번 합동대응단 사례 이후 금융사뿐 아니라 대기업·공공기관까지 관련 수요가 빠르게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