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사외이사 구인난 본격화…"여차하면 소송 걸린다"
입력 2025.12.05 07:00
    주주충실의무 명문화…주주 목소리 커질 듯
    법원도 주주 대표소송 제기에 관대한 기류
    보험 들고 업무 좁혀도 소송 위험 부담 커
    '꿀보직'이던 사외이사, 기업들 구인난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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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 이사의 주주충실의무가 명문화하면서 기업들이 사외이사를 모시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전까지 사외이사는 자리만 채워도 쏠쏠한 보수를 챙길 수 있는 좋은 자리였지만 이제는 의사 결정마다 소송 제기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법원이 주주들의 소 제기에 관대한 기류를 보이는 것도 변수로 꼽힌다.

      국내에선 오래 전부터 지배주주 중심의 의사결정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지만 변화는 더뎠다. 그룹 총수 일가와 가까운 사람들로 채워진 이사회는 '거수기'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책임 부담은 크지 않은데 웬만한 직장인 연봉 수준의 가외 수입이 있으니 특정 직군의 인사들이 여러 회사를 돌며 사외이사를 맡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분위기는 올해를 기점으로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 의무가 회사에서 주주에게로까지 확장된 영향이 크다.

      상법에선 이사는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이나 정관에 위반한 행위를 한 경우 회사에 연대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진다고 규정한다. 다만 회사의 뜻을 형식적으로 추인하는 역할만 할 때는 이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지 않았다. 문제가 있어도 회사와 소통 하에 책임이 감면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주주가 문제를 제기할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상법상 주주(지분 1% 이상 보유)는 회사를 상대로 이사의 책임을 추궁할 소(주주 대표소송)를 제기해달라고 청구할 수 있다. 이사회의 경영 판단이 주주의 이익에 반한다 주장하는 것이다. 담합으로 인한 과징금 부과, 계열사간 자산 양수도 거래 등도 문제 삼을 수 있다.

      상법 개정으로 소수 주주들에 힘이 실린 만큼 소제기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회사는 이에 대비해 임원배상책임보험(D&O)을 들거나, 이사의 업무 범위를 좁히기도 한다. 그러나 상법상 의무 위반을 보험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무 범위를 좁혀도 이사의 '주의 의무'가 문제될 소지가 있다.

      주주의 문제 제기가 있을 경우 이사는 개인 자격으로 소송 대응에 나서야 한다. 직무에 신의성실을 다했다면 결국 법적 책임을 면하겠지만 그 과정 자체가 지난할 수밖에 없다. 예전처럼 거수기 역할만 해서는 책임을 다했다는 것을 입증하기 어렵다. 수천만원의 보수가 예전처럼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사정이 이러니 사외이사 군을 미리 관리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도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다.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모시려 하지만 이런 인사들 입장에선 굳이 소송 위험까지 안고 사외이사 직을 받을 이유가 없다. 더 비싼 몸값을 책정하거나, 애매한 커리어의 인사들을 후보군에 넣어야 할 상황이다.

      한 대형 법무법인 파트너 변호사는 "이전까지 사외이사는 거수기 역할만 해도 됐지만 이제는 의사 결정마다 소송이 걸릴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며 "사외이사 직을 원하는 수요가 줄어들면서 기업들도 후보자 풀을 만들기 어렵다며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법 개정과 더불어 법원의 기류도 변화하는 분위기다. 이전보다 주주 대표소송을 걸기 용이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주주 대표소송은 회사가 주주로부터 청구를 받은 후 30일 안에 소를 제기하지 않았을 경우에 주주가 청구할 수 있다. 과거 대법원은 30일이 지나기 전에 주주가 소를 제기한 경우, 원칙적으로 위법하며 부적법 각하해야 한다고 봤다. 형식적 요건을 더 중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대법원은 지난 6월 판결을 통해 시각을 소폭 바꿨다. 30일 이내에 주주 대표소송을 제기했더라도 회사가 이사를 상대로 소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명시적으로 밝혔다면 대표소송도 적법하다고 했다. 이전처럼 기업이 형식상 하자를 이유로 방어하기 어려워졌다. 주주의 요구에도 적극 응할 수밖에 없다.

      사외이사 재직 경험이 있는 다른 대형 법무법인 파트너 변호사는 "주주 대표소송을 걸기 쉬워졌고, 주주가 승리할 경우 소송 비용도 회사가 낸다"며 "소송 위험이 정말로 현실화한 상황에서 누가 사외이사를 하려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