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외화채 만기 도래로 역대 최대 규모
과거 윈도우 쉽게 안 내주던 기재부도
최근 고환율에 달러채 조달 긍정적이란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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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2023년부터 한국계 외화채권(KP·Korean Paper)의 발행량이 급증한 결과, 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외화채 규모가 사상 최대 수준일 것으로 관측된다. 차환 수요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고환율이 '뉴노멀'이 된 상황에서 기획재정부도 기업들의 달러 조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2020년 연간 300억달러대였던 KP물의 발행량은 2023년부터 연간 600억달러 수준으로 확대됐다. 통상 미국에서 발행되는 채권은 만기 7년물이 주류지만, 국내 기업들은 3년물 등 상대적으로 만기가 짧은 채권을 주로 발행했다. 이에 2026년부터 만기가 도래하면서 내년엔 635억7000만달러에 달하는 외화채의 만기가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외화채를 발행한 국내기업들은 주로 3년물과 5년물을 많이 발행했다"면서 "2023년에 발행한 외화채의 만기 도래로, 2026년과 2027년에도 차환을 위해 꾸준히 외화채 발행 수요가 높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화채는 주로 높은 글로벌 신용등급을 가지고 있거나, 미국 등 해외사업이 활발한 기업들이 발행한다. 대표적으로 현대캐피탈아메리카(HCA), LG에너지솔루션, KT, SK하이닉스 등이 단골 손님으로 꼽힌다. HCA는 미국 현지에서 오토파이낸싱을 담당하는 회사로, 현대캐피탈을 통해 현대차·기아의 연결 실적 및 부채에 집계된다. HCA는 내년에 15억달러 규모의 만기가 돌아올 예정이다.
한 증권사 커버리지 관계자는 "해외 발행은 주로 등급이 좋은 곳들이 한다"면서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이 차지하는 비중도 큰데, 기업 중에선 현대차의 미국 판매를 뒷받침하는 현대캐피탈아메리카의 발행량이 많다"고 말했다.
차환 수요는 증가하는데 원·달러 환율은 심상치 않다. 지난 6월 1350원대까지 내려갔던 원·달러 환율은 다시 1470원대로 오르며 원화 약세가 지속되고 있다. 1500원 돌파 등 상방에 대해서는 의견이 달라도, 당분간 1400원 아래로 내려가는 건 쉽지 않다는게 증권가의 공통된 시각이다.
이에 고환율이 '뉴노멀'로 떠오르며 원화약세가 지속되자 최근엔 외화 차입 전반을 관리하는 기획재정부도 기업들의 외화채 조달에 대한 기조가 바뀌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앞서 기재부는 6월 30일부터 외국기업이 국내에서 외화로 발행하는 채권인 공모 김치본드의 투자제한을 전면 해제하기도 했다.
국내 기업들이 공모로 외화채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기재부로부터 수요 예측 일정을 지정한 윈도우(window)를 받아야 한다. 기재부는 비슷한 시기에 발행이 몰려 KP물이 시장에 쏟아지지 않도록 일정을 분산하는 역할을 한다.
목적은 시기 조율이지만, 외화 건전성에 대한 기재부의 고려 등으로 인해 윈도우를 받기 까다롭다는 기업들의 불평도 존재했다. 그러나 원화 약세가 지속되자 기재부도 달러채 발행을 통한 달러 조달에 너그러워졌다는 평이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과거엔 기재부가 외화조달을 불편해하면서 내수 중심 기업인데 왜 외화가 필요하냐고 묻는 등 까다로운 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엔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기발행하던 규모를 지키기 위해 차환을 선택하는 기업들도 있었는데, 고환율인 지금은 외화조달하겠다 하면 쉽게 내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현재의 고환율을 설명하는 배경에는 복합적인 요인들이 자리하고 있지만, 해외 사업을 전개하는 국내 기업들이 달러를 유보하고 있다는 점도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일반적으로 신용등급이 높아야 해외 조달이 가능한 만큼 우량 기업들이 달러채 발행을 통해 조달하면 환율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란 해석이다.
앞선 증권사 연구원은 "우량한 국내 기업들이 달러로 조달하면 달러 공급이 늘어나는 개념"이라면서 "해외 사업하는 기업들이 달러 유동성을 쥐고 놓지 않는 게 지금 환율이 내려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라 해외 조달이 늘어나면 환율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최근 들어 유독 빠르게 승인을 내주는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기업들이 윈도우를 신청하면 평균 일주일 내에 승인이 된다"면서 "최근 들어 특별히 단축됐다기보다, 가급적 빨리 처리하려고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