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협 선정한 이지스자산운용, '본게임'은 복잡…당국 심사·위임장·흥국 변수까지
입력 2025.12.09 15:21
    프로그레시브 딜서 단독 증액…힐하우스 우협 확정
    외국계 대주주 심사 관건…일본 법인 활용 가능성
    FI 위임장 이달 만기, SPA 체결 이전 시간 압박 커져
    흥국생명, 절차 하자 주장…가처분 검토로 변수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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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1위 부동산 운용사 이지스자산운용의 새 주인 자리를 놓고 진행된 경합에서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최종 낙점됐다. 본입찰 이후 진행된 '프로그레시브 딜'(Progressive Deal)에서 유일하게 가격을 추가 인상하며 한화생명과 흥국생명을 따돌렸다. 

      시장의 시선은 이미 우협 선정 이후 단계로 넘어갔다. 외국계 운용사에 대한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 이달 돌아오는 주주 위임장 만기, 앵커 투자자인 국민연금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오히려 주식매매계약(SPA) 체결까지 많은 난관이 남았다는 평가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매각주관사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는 지난 8일 힐하우스를 이지스자산운용 인수 우협으로 선정했다고 통보했다. 힐하우스는 본입찰 직후 진행된 프로그레시브 딜에서 약 1500억원을 인상, 총 1조1000억원을 써낸 유일한 원매자다. 9000억원대 중후반을 제시했던 한화생명, 약 1조500억원을 적어낸 흥국생명은 이후 추가 가격 인상에 나서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힐하우스는 싱가포르 기반 사모펀드지만, 창업자인 장 레이(Lei Zhang) 대표가 중국계라는 점, 2020~2021년 중국 정부의 '공동부유' 정책 이후 사업 기반을 급격히 아시아 전역으로 재편한 이력 등이 대주주 심사 과정에서의 변수로 꼽힌다. 외국계 운용사의 금융회사 지분 인수는 심사 기준이 더 엄격하게 적용되는 만큼, 거래 속도 역시 시장 기대보다 느려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운용사라고 해서 대주주 심사 문턱이 낮아지는 것도 아니다"라며 "대부분의 딜이 당국 심사 단계에서 국민 정서를 강조하기 때문에 예측과 다르게 흘러간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힐하우스가 이지스 인수 구조를 짤 때 일본 거점 법인을 전면에 세울 가능성도 제기된다. 힐하우스는 지난해 일본 디벨로퍼 샘티홀딩스(Samty Holdings)를 인수하며 현지에 별도 자산운용 플랫폼을 구축한 상태다. 지난 2021년 이후 중국 빅테크 규제 여파로 대규모 손실을 경험한 장 레이 대표가 중국 국적을 포기하고 싱가포르 시민권을 취득한 뒤, 실물자산 투자는 일본 현지 조직이 수행하는 구조로 전환한 점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싣는다.

      외국계가 국내 심사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해외 자회사를 내세우는 방식은 업계에서도 종종 활용되는 구조다. 다만 금융당국의 심사 기준이 갈수록 강화되는 추세를 감안하면 해외 법인을 앞세운다고 해서 심사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진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특히 국민연금이 주요 LP로 참여하고 있는 만큼, 지배구조 투명성은 이번 거래의 핵심 변수가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관들은 여전히 힐하우스의 '중국색'을 민감하게 본다"며 "일본 플랫폼을 전면에 세우는 구조가 자연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스자산운용 인수전을 두고 '시간과의 싸움'이 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매각 대상 지분 절반 이상을 보유한 재무적투자자(FI)의 위임장 유효기간이 이달 말까지이다. 위임장의 효력이 우협 선정까지인지, SPA 체결까지인지에 대한 해석도 엇갈리고 있다. 

      매도자 측은 "인수 의지가 명확하다면 재동의는 기술적 절차에 불과하다"는 입장이지만, 일정이 내년 대주주 심사 국면까지 넘어가면 위임장 재청구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위임장 공백이 생길 경우 매도자 진영 내부에서도 이해관계 조율이 더욱 복잡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다른 경쟁 후보들의 움직임도 변수다. 흥국생명은 "매도자 측이 본입찰을 앞두고 프로그레시브 딜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음에도 힐하우스에 가격을 높이라 제안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번 거래는 당초 조상욱 전 한국대표 체제의 모건스탠리가 앞단에 서 있었지만 조 대표의 사임, 그리고 대표 교체 과정에서 골드만삭스가 힘을 보태게 됐다. 이후 경쟁 유도 중심의 '옥션 스타일'이 강화한 것이란 시각도 있다.

      태광그룹 내부에서도 이와 관련 가처분 소송 등 법률 검토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절차적 정당성이 흔들렸다고 판단할 경우 흥국생명이 법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연금의 영향력도 적지 않다. 최대 펀딩 파트너인 국민연금은 최근 "지배구조가 투명한 곳과 거래하라"는 메시지를 시장에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LP들 사이에서는 "거래를 끌면 끌수록 리스크만 커진다"는 압박도 강해지고 있다. 딜이 장기화되면 펀드매니저 교체, 인력 이탈, 파이프라인 관리 공백 등 연쇄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일부 해외 LP들은 핵심 인력 고용 승계 보장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우협 선정 이후 딜 구조도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 위임장 만기, LP 요구, 흥국의 절차 문제 제기 등 변수들이 뒤엉키면서 남은 절차는 매도자·인수자·주관사 모두에게 간단하지 않다는 평가다. 시장에서는 "본게임은 오히려 지금부터"라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