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까지 고용불안 제기…조직 전반에 KDDX 우려 확산
어느 방식이든 과제 산적…방사청·공정위 판단도 갈림길
신중한 HD현대·공세적 한화, 대관력이 흐름 갈랐단 평가도
-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을 두고 HD현대중공업의 부담이 한층 커진 모습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사실상 수의계약에 제동을 거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은 데다, 노조까지 KDDX 지연에 따른 고용 불안을 공개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2년째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데 결국 올해를 넘길 수 있단 전망도 고개를 든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5일 충남 타운홀미팅에서 "군사기밀을 빼돌려 처벌받은 곳에 수의계약을 준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런 점을 잘 살펴보라"고 지적했다. 특정 회사를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과거 KDDX 기밀 유출 사건으로 처벌 이력이 있는 HD현대중공업을 겨냥한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사실상 수의계약은 정치적으로 봉인됐다는 분석이 빠르게 퍼졌다.
불과 두세 달 전만 해도 수의계약으로 결론날 것이란 점쳐졌지만 한순간에 판이 뒤집힌 것이다. KDDX는 한화오션이 개념설계를, HD현대중공업이 기본설계를 각각 담당했다. HD현대중공업은 수의계약을, 한화오션은 경쟁입찰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현장의 분위기도 급속히 달아올랐다. 11일 HD현대중공업 노조는 "과거의 불법과 오늘의 노동자 생존권이 뒤엉킨 채 정책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KDDX 추진이 계속 흔들리면서 특수선 조직 내 인력 배치 우려, 도크 가동률 저하 가능성 등이 노동자들의 불안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최근 현대중공업 주가 약세 역시 KDDX 불확실성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방위사업청은 오는 22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사업 방식을 결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그날 결론이 날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하다는 의견이 많다. 어느 방식이든 정치·법리·산업 이해가 충돌하며 잡음이 불가피해서다. 이번 논의가 또다시 해를 넘길 가능성도 거론된다. 방사청은 사업방식으로 수의계약과 경쟁입찰, 공동개발 등 3가지 안건을 상정한단 계획이다.
우선 공동설계안은 '상생'의 명분을 앞세우고 있지만 현실적 난제는 적지 않다. 공동설계를 채택하면 HD현대중공업이 수행한 기본설계 내용을 한화오션과 공유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상 핵심 설계기술을 경쟁사에 넘기는 셈이라 내부 반발이 불가피하다. 분담 비율을 어떻게 설정할지, 누가 주도할지, 어디까지 기술을 공유하고 책임소재를 나눌지 등 실무적 난제도 한두 개가 아니다. 세부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양사가 지속적으로 마찰을 빚을 가능성도 크다.
일각에선 공동설계 방식이 담합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단 지적도 있었다. 방사청은 이에 공정거래위원회에 공동설계에 대한 유권해석을 공식적으로 의뢰했다. 하지만 방사청 안팎에선 이를 두고 "사실상 보여주기용 절차"라는 평가가 잇따른다.
한 방사청 관계자는 "사실 보여주기 성격이 강한 게 사실"이라며 "공정위에서 명확한 답변을 안 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이어 "다만 이런 액션을 취한 건, 물어봤는데 답변이 없었다는 것과 애초에 물어보지 않은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외부 여론을 의식해 대응하는 모습을 연출한 데 그친 것으로 읽힌다.
경쟁입찰로 가더라도 문제는 여전하다. 방사청은 지난 9월 HD현대중공업에 적용 중인 보안감점 1.8점을 2026년까지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업계 반발과 법적 논란이 커지자 다시 재검토하겠다고 입장을 선회했다. 이 때문에 경쟁입찰을 추진하려면 먼저 보안감점 연장 여부에 대한 방사청과 HD현대중공업 간의 법적 판단이 선결돼야 한다.
HD현대중공업으로서는 난처해졌단 평가가 나온다. 판세를 뒤집을 카드가 마땅치 않고, 정치권의 직접적인 압박 속에서 움직일 여지가 좁아지고 있어서다.
한편에선 이번 국면의 불리한 흐름이 결국 '대관·정책 소통의 격차'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화오션은 전관·대관 인력 영입에 적극적이라는 평가가 많은 반면, HD현대중공업은 국회와 정책 라인에서 비교적 존재감이 약하단 지적이 업계 안팎에서 꾸준히 나왔기 때문이다.
한화그룹이 국회·정책 라인과의 접점을 넓히는 흐름을 두고 시각이 엇갈리지만, 사업 추진 과정에서 대관 기능이 일정 부분 변수로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란 분석도 있다.
사안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전관 채용만 놓고 보면 한화가 삼성, SK보다도 열심히 뛰는 느낌"이라며 "반대로 말하면 HD현대중공업은 고문 영입 등 대관 조직을 강화하지 못해 이런 국면에 놓인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고 했다.
그는 이어 "기술력만으로 되는 시대가 아닌 만큼, HD현대중공업도 국회를 움직일 수 있는 창구, 정책 라인과의 소통력을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사실 오너 의중이 반영된다면 인력 보강은 절차가 어려운 일은 아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