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계열화 마친 테슬라 제외하면 박 터지는 시장
마침 테슬라 협력 강화 중인데…업계 반응에 시선
완성차뿐 아니라 구글 엔비디아도 고전 중인 SDV
내재화 전략 기로 놓인 현대차 선택 더 부각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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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만이 독일 ZF 프리드리히스하펜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사업을 인수했다. 차 부품 제조사 중 하나로 머물러 있던 하만이 중앙집중형 컨트롤러 기반 플랫폼 비즈니스까지 넘볼 수 있는 사다리를 놓는 장면으로 보인다.
▲불과 5개월여 전 삼성전자가 테슬라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협력에 나선 것과 따로 떼어놓고 보기 어렵다는 분석과 함께 ▲최근 자율주행 역량을 두고 잡음이 무성한 현대차그룹과 엔비디아 진영의 협력 구도에 미칠 영향 등이 함께 거론된다.
23일 삼성전자는 미국 자회사 하만을 통해 독일 ZF의 ADAS 사업을 인수한다고 밝혔다. 거래 금액은 15억유로(원화 약 2조6000억원)로 내년 중 인수 절차가 마무리된다. 하만 인수 8년여만에 전장 사업에서 굵직한 인수합병(M&A)이 이뤄졌다.
단순히 하만 독자적으로 조 단위 M&A를 치른 것 이상의 의미가 엿보인다.
ZF의 ADAS는 스마트 카메라 업계 1위 기업이다. 자동차에 다는 '눈'을 만드는 셈인데, 자율주행 구현에서 가장 핵심 부품으로 통한다. '눈알'에 해당하는 이미지센서(CIS) 영역에선 삼성전자 시스템LSI가 소니에 이어 글로벌 2위 입지를 점하고 있다. 하만은 ADAS 인수를 통해 중앙집중형 컨트롤러 구조로 전장 사업을 강화할 계획이라 밝혔는데, 삼성전자 내부에서 반도체(CIS) 설계, 양산부터 스마트 카메라, 통합 아키텍처 시스템까지 사실상 수직계열화에 가까운 구조가 완성된다. 삼성전자가 하만을 통해 '소프트웨어 기반 자동차(SDV)' 시장에 한 발짝 더 다가선 형국으로 풀이된다.
독립성이 보장된 하만의 M&A라 해도 SDV 시장에 삼성전자가 등판하는 게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도 관전 포인트다. SDV는 완성차를 하나의 IT 기기로 봤을 때, 새로 부상할 SW 플랫폼 비즈니스를 겨냥한 개념으로 통한다. 스마트폰 등장 이후 애플 iOS와 구글 안드로이드 진영이 SW에서 막대한 수익과 시장 지배력을 확보한 것과 유사한 흐름이다. 수년간 완성차 기업과 빅테크들이 각자 주도권을 쥐기 위해 난립하고 있지만 대체로 갈피를 못 잡고 헤매는 형국이 되풀이되는 시장이기도 하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어차피 전장 산업은 완성차 고객사에 마진을 관리 당하는 부품사 중 한 곳으로 남느냐, 자체적으로 록인 생태계를 구축하는 SDV, 플랫폼 비즈니스로 넘어가느냐 기로에 서 있다"라며 "테슬라를 모방해 내재화, 수직계열화에 나선 완성차 고객사들도 헤매고 있는 시장이라서 아직 기회는 열려 있는데, 엔비디아나 구글 같은 빅 테크들도 껴 있어 쉽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박 터지는 시장에 진입한 삼성전자가 하필 테슬라와의 협력 관계를 다져가는 시기인 것도 눈길을 끈다. SDV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해당 용어를 대중적으로 전파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실제로 산업 전체의 뱃머리를 SW 중심으로 잡아돌린 건 테슬라다. 테슬라는 반도체 설계부터 인공지능(AI) 추론, 학습까지 전 영역 내재화를 마쳐 실질적인 SDV 구현을 코앞에 둔 유일한 기업으로 통한다.
SDV 시장 주도권을 노리는 기업들로서는 삼성전자 전략적 판단이 무척 중요해진 상황이라는 분석도 가능해 보인다. 이번 하만의 M&A만 놓고 보면 SDV 전환을 꾀하는 완성차 업체들에 솔루션만 제공하는 형태로 중립적 위치를 유지할 수도 있지만 테슬라의 약한 고리를 삼성전자가 하나, 둘 보완하는 형태로 협력 구도가 강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컨설팅업체 한 관계자는 "SW 역량이 안 되거나, 제조·양산 기반이 부족하거나, 기기(자동차)나 관련 데이터 기반이 없거나 식으로 다들 퍼즐 한 두개씩이 빠져 있다. 그래서 SDV를 주장만 하면서 구현은 못하는 것"이라며 "이미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협력으로 테슬라의 마지막 약한 고리를 해결하기로 결정한 상태"라고 분석했다.
이번 M&A 이후로 전략적 기로에 서 있는 현대차그룹의 선택도 더욱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 역시 일찌감치 자체 운영체제(OS)와 OTA 체계를 구축하고 포티투닷 인수, 모셔널 설립을 통해 자율주행, SDV 전반을 내재화하려는 전략을 펼쳐왔다. 그러나 자율주행 기술 경쟁력 측면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개발 일정만 반복적으로 늦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 관련 인사와 조직 체계를 재정비하면서 내부 교통정리가 한창인 상황이다.
관련 업계에선 현대차그룹이 내재화를 고집하기보다 엔비디아와 협력을 강화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이 엔비디아와 스마트팩토리, 로보틱스, 시뮬레이션 등 피지컬(제조) AI 영역으로 협업 범위를 넓히며 GPU 동맹에 나선 참이기도 하다. 현대차그룹은 엔비디아의 약한 고리 전반을 채워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파트너로 꼽힌다.
외국계 투자은행(IB) 소속 한 연구원은 "수년 전 애플카 협력설이 부상했던 때처럼 현대차그룹 내부에서도 주도권 문제가 걸려 있어서 쉽게 결정내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라며 "그러나 현실적으로 시장에선 테슬라와 중국 업체를 제외한 나머지 완성차 기업에 이미 판정패를 내리고 있다. 현대차가 엔비디아를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제조업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상당하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