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금융지주 회장 신년사…'AI'·'머니무브', 은행 중심 구조 흔들린다
입력 2026.01.02 10:38|수정 2026.01.02 10:38
    AI·디지털 전환 가속 속 자본시장 무게중심 이동
    증권·투자 경쟁력 시험대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4대 금융지주 회장들이 올해 신년사를 통해 공통적으로 ‘AI’와 ‘머니무브’를 핵심 화두로 꺼내 들었다. 기술 혁신이 금융의 작동 방식 자체를 바꾸는 대전환기에 접어든 만큼, 과거 은행 중심의 수익 구조에서 벗어나 자본시장 중심으로 체질을 전환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단순한 디지털 고도화가 아니라, 금융그룹의 성장 축 자체를 재편하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은 신년사에서 “고객의 시간은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기술은 업의 경계를 허물며, 자본과 자산은 국경과 업권을 넘나들고 있다”며 “AI라는 거대한 파도가 금융시장의 판을 바꿀 것”이라고 진단했다. 올해를 금융산업 패러다임 전환기로 규정한 것이다.

      양 회장은 특히 지난해 성과에 대해서도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그는 “WM, 중소법인 등 핵심 비즈니스와 새로운 시장·사업 도전 측면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특단의 각오와 노력이 있어야 그룹이 레벨업할 수 있다”고 밝혔다. KB금융은 올해 경영전략 키워드로 ‘전환과 확장(Transition & Expansion)’을 제시하며, 머니무브가 본격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대비해 청년·시니어·중소법인·고액자산가 등 전략 고객군을 재정의하고, 디지털 자산과 AI 비즈니스 영역에서 선제적으로 고객과 사업 기회를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 역시 AI를 금융 질서를 뒤흔드는 구조적 변수로 지목했다. 진 회장은 “지금은 기술이 금융의 질서를 바꾸는 중대한 변곡점”이라며 “웹 2.0과 웹 3.0을 넘나들며 신한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AX(인공지능 전환)와 DX(디지털 전환)를 “수익이나 효율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과제”로 규정하며, 전사적 속도전을 주문했다.

      특히 진 회장은 생산적 금융의 해법을 자본시장에서 찾았다. 그는 “향후 그룹 성장은 자본시장에서의 경쟁력에 달려 있다”며 “혁신 기업의 성장 파트너로서 투자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 여신 공급을 넘어, 산업과 미래 변화를 꿰뚫는 투자 판단 능력이 금융그룹의 핵심 역량이 된다는 인식이다. 이를 위해 인력·조직·평가체계 전반을 자본시장 중심으로 재정렬하겠다는 메시지도 분명히 했다.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보다 직설적으로 은행 비즈니스의 한계를 언급했다. 함 회장은 “은행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증권사가 있는 시대”라며 “가계대출은 성장의 한계에 도달했고, 기업대출과 투자 부문에서는 옥석 가리기를 할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그룹의 맏형 역할을 해 온 은행의 위기”라고 표현했다.

      AI에 대한 문제의식도 강하게 드러냈다. 함 회장은 “모건스탠리 보고서에 따르면 2028년까지 빅테크의 AI 투자 규모가 3조 달러에 이를 것”이라며 “이 정도 자금이 투입되는 기술이 바꿀 세상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예금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증권사를 중심으로 한 자본시장 상품으로 이동하는 머니무브가 가속화되고 있다”며 “부동산 등 안전자산 중심 운용에서 벗어나 실물경제와 혁신산업 성장에 기여하는 자금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생산적 금융 명가’로의 복귀를 전면에 내세웠다. 임 회장은 “생산적 금융은 기업금융 명가인 우리금융이 가장 자신 있고,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라며 “은행·보험·증권을 축으로 종합금융그룹 경쟁력을 강화하고 시너지 기반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가속하겠다”고 밝혔다. 우리금융 역시 전사적 AI 전환(AX)을 통해 디지털 신산업 분야에서의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4대 금융지주 회장들의 메시지를 종합하면, 올해는 단순한 디지털 고도화의 해가 아니라 금융그룹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분기점으로 읽힌다. AI 기술 발전이 고객 접점과 자금 흐름을 바꾸고, 이는 자연스럽게 은행 중심 구조에서 증권·투자 중심 구조로의 재편 압력을 키우고 있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각 금융지주의 자본시장 경쟁력과 실행력에 달려 있다는 평가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AI 시대에는 예대마진 중심 모델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뚜렷하다”며 “올해는 은행에서 증권사로의 머니무브가 실제 숫자로 확인되는 첫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4대 금융지주 회장들의 신년사는 그 위기의식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