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 섞기 금지" vs "가이드라인 없어"…귀에 걸면 귀걸이 된 '모범관행'
입력 2026.01.20 07:00
    금융당국, 특별점검 앞두고 이사회 전문성 분류 지적
    말하기 나름인 '적정선'…자율 속 깊어지는 현장 고심
    출범 앞둔 지배구조 TF, '자의적 잣대' 반복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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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금융당국이 이달부터 8대 은행지주 지배구조 특별점검을 실시할 예정인 가운데, 사외이사의 '전문성 분류 체계'가 핵심 지적 사항으로 꼽히고 있다. 이전 검사에서도 드러난 부분으로, 성격이 다른 전문 영역을 임의로 통합해 공시하는 관행이 이사회의 실제 역량 공백을 가리는 '형식적 이행'에 해당한다는 판단이다. 

      반면 금융지주들은 당국이 모범관행을 기준으로 이같은 지적사항을 제시할 때마다 실무적 혼선이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가이드라인에 맞춰 '적정 선'을 찾는 게 쉽지 않은 상황에서, 결국 당국의 해석에 따라 평가가 엇갈릴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는 토로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오는 19일부터 23일까지 KB·신한·하나·우리 등 8대 은행지주를 대상으로 지배구조 실제 운영현황에 대한 특별점검을 실시한다. 이번 점검은 모범관행의 취지를 약화시키는 '형식적 이행' 사례를 중점 점검하겠다는 취지다.

      특히 금감원은 최근 검사 과정에서 사외이사 전문성 항목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이사회의 집합적 다양성을 왜곡한 사례를 주요 비적정 사례로 꼽았다. 대표적으로 상관성이 낮은 '소비자보호'와 '리스크관리'를 단일 항목으로 두는 식이다. 성격이 다른 두 분야를 하나로 묶어 분류할 경우, 실제로는 두 명의 전문가가 필요한 영역을 한 명으로 충족한 것처럼 비쳐 이사회 역량 공백을 은폐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3월 말 기준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의 사외이사 역량 구성표(BSM)를 분석한 결과, 핵심 역량인 금융·경영·경제를 제외한 나머지 항목은 지주마다 각각 다르게 관리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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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법률 분야만 해도 KB는 규제와, 신한은 내부통제와 묶었지만 하나와 우리는 독립 항목으로 관리하고 있다. 특히 금감원이 최근 지적한 리스크관리와 소비자보호 영역의 경우, 각사마다 분류가 제각각이었다.

      리스크관리의 경우 KB금융은 재무와 리스크관리를 하나로 묶어 관리하고 있는 반면, 신한금융과 우리금융은 리스크관리를 별도 항목으로 분리해 전문성을 강조했다. 반면 하나금융은 사외이사 전문성 분류에서 리스크관리를 별도로 지정하지 않았다.

      소비자보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금융은 소비자보호를 독립 항목으로 둔 반면, KB금융과 하나금융은 소비자보호를 ESG 항목에 포함해 분류하고 있다. 신한금융은 소비자보호 전문성을 별도로 측정하는 독립 항목이 없었다.

      전문성을 분류하는 항목 수 역시 우리금융(10개), 신한(8개), KB·하나(각 7개) 순으로 차이가 컸다. 다만 항목을 세분화할수록 적임자 선임이 어려워지는 '역설'도 나타났다. 실제 우리금융은 소비자보호 등을 별도 항목으로 쪼갰지만, 정작 해당 분야의 전문 사외이사는 한 명도 선임하지 못해 공백이 그대로 노출됐다.

      일각에선 이처럼 사외이사 전문성을 두고도 분류 기준이 고무줄처럼 제각각이다 보니, 각 사 이사회의 전문성을 객관적으로 비교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러자 일각에선 향후 금융당국 지적을 피해 가기 위해서는 당국 차원의 통일된 가이드라인이 나오는 편이 낫지 않겠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반면 금융지주들은 이사회 구성이 경영 전략과 지배구조 특성을 반영한 자율적 사안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민간 기업의 내부 규범이나 공시 기준은 각 사의 판단 영역인 만큼, 금융지주회사법이나 은행법 등 상위 법령에 명시되지 않은 세부 사항까지 당국이 일일이 규제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논리다.

      금융지주들은 금융당국이 모범관행을 기준으로 지적사항을 적용할 때마다 이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당국은 '자율성'을 존중하되 가이드라인을 지키라는 입장이지만, 금융사 입장에서는 강제성 없는 권고 사항의 '적정 선'을 찾는 것이 실무적으로 까다롭다는 토로가 나온다.

      시대 흐름에 따라 역량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는 점도 고충이다. 리스크 관리의 경우 과거에는 소비자 보호의 일환으로 인식됐지만, 최근에는 자본 관리 등 재무적 성격이 짙어지는 추세다. 환경 변화에 따라 전문 영역의 정의와 조합이 수시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금융권 설명이다.

      금융지주 한 관계자는 "각 지주가 처한 상황과 중점 전략이 다른 만큼 어느 방식이 정답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당국은 자율에 맡기되 적정선을 유지해 달라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그 모호한 기준을 맞추는 게 사실상 가장 어려운 숙제"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