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감당하기 벅찬 韓 전력시장…SK에 KKR까지 민간자본 준비태세
입력 2026.02.12 07:00
    AI 시대 전력·인프라 수요 전세계가 예측 실패
    韓 전력시장도 마찬가지…한전 홀로 대응 불가
    발전·거래·판매 전 영역서 민간 역할 증대 전망
    대기업엔 국내부터 美까지 새 먹거리로 부상中
    국민성장펀드도 곧 출범…PE업계 역할도 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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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인공지능(AI) 시대 들어 전력시장은 정부 중앙계획이 작동하기 어려운 구조로 바뀌고 있다. AI 데이터센터(DC)나 반도체 공장이 요구하는 전력이 과거와 질적, 양적으로 달라지면서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이 독점으로 책임질 수 있는 인프라가 아니게 됐다는 분석이 많다. 

      전방 산업 변동성이나 중장기 전력난 우려가 계속 커지는 만큼 한전이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부터 민간 자본과 기업의 참여 범위가 확대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발 빠른 대기업이나 글로벌 펀드 등은 규제 불확실성에도 일찌감치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 

      연초 인수합병(M&A) 시장에선 KKR이 SK그룹의 울산GPS·SK멀티유틸리티 및 현지 AI DC 소수지분 투자에 힘을 쏟고 있다. 별개 거래처럼 보이지만 SK그룹 AI 인프라 디벨로퍼 구상에서 연속적으로 추진되는 재무적투자자(FI) 유치 작업으로 통한다. 아마존웹서비스(AWS) 같은 해외 빅테크를 유치하기 위해 국내 대기업과 글로벌 인프라 펀드가 공동 전선을 형성하는 모습이다. 

      정부 역시 이번 거래를 물밑에서 지원하고 있다. 지난 연말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울산을 분산에너지 특구로 지정하며 지역 내 민간 발전소와 수요처가 직접 전력구매계약(PPA)을 맺을 수 있게 제도를 손질했다. 국내에서도 한전을 경유하지 않는 방식의 전력 조달과 망 구축이 제도적으로 열린 것이다. 

      투자업계에선 올해를 기점으로 이 같은 성격의 거래가 점점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도 현행 전력시장 체계로는 AI 시대를 준비하기 힘들다는 판단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컨설팅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 메모리 반도체나 변압기, 고압전선 등 가격이 치솟는 건 AI를 제대로 굴리는 데 필요한 필수 인프라 범위나 수요를 민간기업들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는 얘기"라며 "정부 정책으로 굴러가는 전력시장도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한전은 비용 상승을 고객에게 전가할 수도 없고 추가 자본조달 여력도 바닥났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정부는 작년부터 한전과 산하 5개 발전 공기업 통합 문제부터 전력도매가격(SMP) 기반의 요금체계 개편 방안까지 계통운영과 가격 체계, 지배구조 전반을 재검토하고 있다. 동시에 원전을 기존 계획대로 건설하는 동시에 필요할 경우 추가 설치 가능성도 열어둔 상태다. 작년 도입한 분산특구 제도까지 포함하면 전방 산업 변화에 뒤처지지 않게 전력시장 개편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자문시장 한 관계자는 "AI 3대 강국 공약 달성을 위해서도 에너지고속도로 구축이 필요했는데, 지금 전세계 테크 기업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줄을 선 상황"이라며 "용인 클러스터 내 팹(Fab) 증설 시점이 이렇게 앞당겨질 줄도 몰랐고, 전력시장을 공공재로만 여기던 기존 시각이 계속해서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고 말했다. 

      SK그룹 외 삼성, 현대차그룹을 위시해 포스코, 두산, LS 등 대기업들도 몸을 풀고 있다. 

      그동안 한전이 담당해온 전력 발전, 거래, 공급 영역 전반에서 민간 참여 유인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부족한 전력을 보충하기 위해 SK나 GS, 포스코 등 일부 대기업이 민자 발전소를 짓는 정도로만 전력시장에 참여해왔으나 앞으로는 수요처와 직거래 시스템부터 별도 그리드를 설계하고 송배전망을 구축하기까지 전 영역에서 사업 기회가 확대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사업 기회가 국내에 국한되지도 않는다. 두산그룹의 경우 미국 시장을 겨냥해 소형모듈원자로(SMR) 파운드리 사업을 구상하고 있고, 관련 설계·조달·시공(EPC) 경험이 풍부한 삼성, 현대차그룹 계열 건설사들도 수주에 열을 올리고 있다. 포스코그룹의 경우 SK와 마찬가지로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운영 외 트레이딩 영역까지 확장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 최대 전선 사업자인 LS그룹은 에너지고속도로에 필요한 송배전 인프라 수주는 물론 전력계통 운영에 필요한 솔루션 사업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자연히 국내외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에도 기회가 열리고 있다. 정부가 150조원 규모 국민성장펀드 상당 부분을 국내 AI 인프라에 투입할 예정인 만큼 이를 적재적소에 뿌려줄 수 있는 펀드들의 역할 역시 중요해졌다. 최근 SK그룹의 울산GPS·SK엠유 소수지분 투자유치 역시 원래는 KKR이나 브룩필드, EQT파트너스 등 인프라 펀드들의 영역으로 거론됐지만 국내 크고 작은 PE들이 대거 관심을 보였다.  

      M&A시장 한 관계자는 "지금 SK가 유치하는 투자 건들은 단순히 개별 자산 상징성이나 현금흐름으로만 평가하기 어렵고, 앞으로 이런 딜이 쏟아질 거라는 계산도 포함돼 있다"라며 "올 하반기부터 전력시장 개편 작업과 국민성장펀드 출자가 본격화할텐데 일찌감치 레코드를 선점할 필요가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