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PEF, '韓운용사 인수' 전략 선회?…"로컬 투자 대신 플랫폼 확보가 낫다"
입력 2026.02.12 07:00
    이지스 인수전 계기로 글로벌 운용사도 '운용사' 관심
    구조조정 매물 감소·IPO 난이도 상승에 직접투자 한계
    “차라리 플랫폼 확보가 장기적으로 유리” 전략 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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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지난해 말 국내 최대 부동산운용사 이지스자산운용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싱가포르계 사모펀드(PEF) 운용사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가 선정되면서, 국내 시장에서 투자 활동을 벌이고 있는 다른 글로벌 운용사들 사이에서도 적잖은 파장이 일었다.

      이지스자산운용을 운용사가 인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글로벌 PEF 본사에서는 ‘왜 우리 한국 지사에서는 해당 딜을 검토하지 않았느냐’는 반응이 나왔다는 분위기도 전해진다. 

      통상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PEF들은 바이아웃 부문을 비롯해 크레딧, 인프라 등의 섹터 투자를 병행해 왔다. 특히 바이아웃 부문은 자체 블라인드펀드를 활용한 직접투자가 중심이어서 금융사에 투자해 온 사례는 있었지만, 부동산 운용사처럼 실질적인 투자 활동을 수행하는 ‘운용사’를 다시 인수하는 흐름은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글로벌 운용사들 사이에서도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해외 시장에서는 PEF 운용사들이 또 다른 운용사를 인수하는 이른바 ‘운용사 간 인수합병’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지난달 EQT파트너스는 글로벌 세컨더리 전문 운용사 콜러캐피탈의 지분 100%를 약 32억달러(약 4조70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콜러캐피탈은 1990년 영국에서 설립된 세계 최대 규모의 세컨더리 투자 하우스로, 사모펀드(PE) 세컨더리와 프라이빗 크레딧 세컨더리를 아우르며 운용사(GP)와 출자자(LP)를 모두 고객으로 두고 있다. 이번 거래 이후 콜러캐피탈은 EQT 산하에서 프라이빗 캐피탈과 부동산 부문과 함께 그룹 내 신규 세컨더리 사업의 핵심 플랫폼을 담당한다. 

      해당 거래는 단순한 기업 인수를 넘어 운용사 간 전략적 M&A로 해석되면서 시장의 눈길을 끌었다. 글로벌 PEF나 기관투자가가 운용사 지분을 확보하거나 협력 관계를 맺는 사례는 종종 있었지만, 운용사가 다른 운용사의 전부 또는 경영권을 직접 인수하는 형태는 아직 드문 편이다. 국내에서도 아직 힐하우스캐피탈이 이지스자산운용 인수전에 참여한 사례가 대표적인 ‘운용사가 운용사를 인수한’ 거래로 꼽힌다.

      다만 이런 딜에 대형 운용사가 직접 뛰어들 경우 자금력 측면에서 전략적투자자(SI)들이 밀릴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유사 사례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지스자산운용 매각 과정에서도 한화생명과 흥국생명 등 국내 SI들이 적극적으로 인수전에 나섰지만, 힐하우스 측이 본입찰 직후 진행된 ‘프로그레시브 딜’ 과정에서 경쟁자들이 따라오기 어려운 가격을 제시해 최종 승기를 잡았다. 

      현재 경영권 매각을 저울질 중인 마스턴자산운용 역시 여러 원매자를 열어두고 있는 가운데, SI들을 비롯해 외국계 투자사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PEF 운용사들이 최근 운용사 인수에까지 관심을 넓히는 배경에는 제한적인 딜 환경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바이아웃 중심의 PEF는 통상 경영난에 빠졌거나 저평가된 기업을 인수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린 뒤 되파는 구조를 취하는데, 대기업 구조조정 매물이 줄어들면서 투자 기회 확보 자체가 쉽지 않아졌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대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온 자산을 인수하거나 재무적투자자(FI)로 참여해 이후 기업공개(IPO)나 전략적 매각으로 회수하는 거래, 또는 성장 단계 기업을 사들여 재매각하는 사례가 주요 투자 경로였다. 

      대표적으로 MBK파트너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 금융·유통 자산 등에 적극 투자하며 존재감을 키웠다. 은행·보험사·유통기업 등을 인수한 뒤 사업 재편을 거쳐 가치를 높이고 엑시트하는 방식으로 트랙레코드를 쌓아왔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홈플러스는 2015년 당시 ‘명운을 건’ 대형 거래로 평가됐으며, MBK파트너스의 대표적인 투자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다수의 글로벌 PEF들 역시 2000년대 이후 외국 자본 유치가 확대되던 흐름 속에서 국내 대형·중형 거래에 참여했으며, 일부 자산은 전략적 매각 등을 통해 투자 수익을 실현했다. 그러나 포트폴리오 기업을 되팔수록 기업가치가 커지면서 이를 감내할 인수자를 찾기 어려운 데다, 특히 국내 시장 내 플레이어 자체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나마 국내에서 대형 거래를 소화할 수 있는 주체로 꼽혀온 MBK파트너스마저 최근에는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IPO 환경 역시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이런 여건 속에서 부동산 운용사 등 로컬 시장에서 직접 투자 활동을 벌이는 ‘운용사’에 대한 투자가 오히려 매력적인 대안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 글로벌 투자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서 투자 대상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기준이 크게 바뀌지 않은 상황인데, 글로벌 PEF들은 향후 몇 년간 국내 상위 대기업 그룹이 대규모 경영난에 빠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며 “무엇에 투자할지에 대한 과제가 남아 있는 가운데 여러 매물을 검토하고 있지만 뚜렷한 해법이 없는 상황이고, 특히 사모펀드 투자 사이클을 감안하면 엑시트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산에는 애초에 진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