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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멀다하고 두산그룹발 매물들이 M&A 시장에 쏟아지고 있다.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꼽혔던 두산솔루스를 시작으로 두산건설, 두산모트롤BG가 차례로 나왔고 이젠 두산퓨얼셀, 네오플럭스, 그리고 그룹 중추인 두산인프라코어도 물망에 올랐다.
두산중공업을 살리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상황만 놓고 보면 사실상 그룹을 해체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반대로 두산그룹이 이것들을 정말 다 팔 생각이 있는지 의심이 든다.
두산솔루스는 두산그룹이 제시한 가격과 매수자들이 원하는 가격의 갭이 상당히 커 결국 협상이 결렬됐다. 두산모트롤BG 예비입찰 흥행이 저조했다. 이 역시 시장과의 눈높이가 맞지 않았다는 얘기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와 관련한 8000억원 규모의 소송이 진행 중이고 연내 대법원 판결이 나온다. 두산 측이 2심에서 패소한 탓에 뒤집기가 쉽지 않아 이 부담을 짊어지고 인수에 나설 매수자가 과연 있을까 싶다.
우리가 안쓰는 물건을 중고시장에 내놓을 때도 '이 물건을 꼭 팔아야 하나', '내놓는다면 팔리긴 할까', '가격을 얼마로 책정해야 관심을 보일까' 등등의 질문을 던지며 신중하게 접근한다. 이럴진대 기업을 팔 땐 오죽할까. 자구안을 발표했지만 계열사들을 우후죽순 다 내놓는 모습에서 진실성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점은 '그래서 두산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그룹의 미래를 어떻게 설정했는지, 그러기 위해서 지금의 캐시카우를 지킬 것인지, 아니면 일전에 그랬던 것처럼 또 한번의 큰 변신을 꾀할 것인지. 오너 일가, 경영진, 어느 누구도 비전을 제시하는 이가 없다.
두산그룹의 애로 사항도 분명히 있을테다. 자신들의 의도하지 않았지만 '원전기업' 두산중공업을 친환경 에너지 전문기업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이것이 두산그룹의 미래라면 기회만큼이나 리스크도 크다. 지금부터 준비해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박정원 회장이 연내 1조원 규모 유상증자, 자산매각 추진 계획을 그룹 전 직원 메시지로 전달했지만 언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지 모르는 각 계열사들의 임직원들은 좌불안석이다. 두산베어스만큼은 매각 의사가 없다며 줄곧 선을 긋고 있다. 그룹의 간곡한 호소에 결국 채권단은 두산베어스를 매각 최후순위로 낮추는 데 동의했다. 이에 시장에선 "두산그룹의 정점은 야구단인가", "앞으로 야구만 하겠다는 건가"라는 조소 섞인 물음을 던진다.
두산의 외형 확장은 그룹의 과감한 결정도 주효했지만 두산을 믿고 투자한 투자자들과 그 결정에 동참하고 노력한 임직원들 덕분이기도 하다. 오너와 경영진은 두루뭉술한 3조원 자구안만 내놓을 게 아니라 100년 기업의 미래를 어떻게 그려 나갈 것인지 투자자들과 임직원들에게 제대로 설명하고 설득해야 할 때다.
(이 와중에 두산퓨얼셀은 매각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그룹이 친환경 에너지 전문기업으로 거듭나기로 한 만큼 채권단 역시 친환경 에너지 계열사 매각은 압박하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두산솔루스 등 핵심계열사 매각도 서두르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밸류업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최대현 산업은행 부행장도 지난 17일 산업은행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매각 기한을 정하면 시간에 쫓기고 실제 생각한 가격 이하에 매각될 가능성이 있다"며 "두산의 자산 매각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자율적으로 진행되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6월 19일 07:00 게재] (2020년 06월 24일 07:00 업데이트)
입력 2020.06.24 07:00|수정 2020.06.25 0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