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주당 2만9600원에 1조원 증자…목적 불명확하고 가격 낮아 시장 비난
이후 2년간 M&A 등 자본 활용 극히 적어…뒤늦게 '주주환원'용 자사주 매입
증자가격 < 자사주 매입가격 …싸게 주식 나눠 팔았다가 비싸게 되사주는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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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2년 전이다. 2020년 9월 신한지주가 사모펀드(베어링ㆍ어피너티)들을 대상으로 1조1600억원 증자를 했다. 주당 2만9600원으로 지금 주가의 80% 수준이었다.
당시 "뭐하러 이 시기에, 이런 낮은 가격에 증자를 하느냐"고 사방에서 비난이 빗발쳤다. (관련기사 : KB지주 증자엔 '기대'하고 신한지주 증자는 '냉대'한 이유?) 오죽하면 애널리스트들이 내놓는 멘트가 살벌하기 그지 없었다. "주식가치 하락은 불보듯 뻔하다" , "경영진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이 됐다", "신한이 주가 방어를 포기했다", "기존 주주를 무시하는 처사다".
그도 그럴 것이 증자하기 1년 전 신한지주 주가가 4만원대에 달했다. 그런데 그 주가가 반토막을 바라볼만한 시점을 콕 찍어 거의 '반값세일'로 제3자에게 주식을 나눠줘서다. 그러니 이 주식을 받아간 베어링과 어퍼니티를 두고 사모펀드들 사이에서는 '계를 탔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싸게 주식 넘겼다가 비싸게 되사주는 신한…조달한 '급전'은 거의 쓰지 않아
그렇다면 신한지주가 이런 굴욕적인(?) 조건으로 긴급히 증자를 단행할 이유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에 증자(정확히는 EB발행)를 했던 KB지주는 '푸르덴셜 생명 인수'라는 자금소요 명분이라도 있었다. 신한은 대규모 M&A를 단행한 것도 아니었다.
비판이 끊이질 않자 신한지주가 이런 저런 이유를 IR등을 통해 설파했는데 역시 설득력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코로나 사태 장기화 가능성에 대비한다" , "손실흡수 능력을 강화한다", "그룹 중장기 성장전략을 적극 추진할 자본여력을 확보한다"
이렇게 급전을 땡겨놨지만 불과 1년뒤 신한지주 실적이 이를 무색하게 했다. 2021년 신한지주의 연간 영업이익이 1조4000억원을 넘겼다. "불과 1년만 지나면 벌어들일 돈을 뭐하러 그 악조건에 증자를 했느냐"라는 의구심이 안나오는게 이상했다.
이렇게 사방팔방에서 비판을 받더라도...조달한 자본을 제대로 활용했으면 이후 논란이 줄어들 수 있었다. 그 무렵 반드시 지불해야 할 돈이 필요했다든가, 대형 M&A라도 단행한다든가. 그런데 2년이 지나도록. 신한지주는 아무런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1조원의 증자대금이 크게 쓰이는 곳도 없었다. 작년 10월 BNP파리바카디프손보 인수(약 410억원) 등의 투자가 있었지만 무려 1조원 증자의 목적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러던 신한지주가 올해 들어 갑자기 '자사주 매입ㆍ소각'을 시작했다. 이유는 '주주가치 제고가 필요하니 주주환원정책을 하겠다". 올해 4월 1500억원의 자사주를 매입했다. 이때 신한지주가 주주들로부터 자사주를 사온 금액이 주당 4만원이 넘는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신한지주는 내년 1월1일까지 자사주 1500억원을 추가로 취득하고 소각하겠다고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주당 400원, 총 2100억원의 배당까지 주겠다고 발표했다. 역시 '주주환원정책'이라는 명분이다.
쉽게 말해 2만9000원대에 주식을 팔아 놓고, 2년 지나서 그 주식을 4만원 가량에 되사오는 상황이다.
누군가 '급전'이 필요하다면서 갖고 있던 샤넬 명품백을 어느 지인에게 2만원에 팔았다고 치자. 그럼 당연히 급전의 용도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2만원을 아무데도 쓰지 않고 고스란히 집안에 남겨 두고서는 다시 2년뒤 지인을 찾아가 4만원에 그 샤넬백을 되사왔다면? 나올 질문은 하나다. "아니...그럴거면 애시당초 뭐하러 샤넬백을 팔았느냐."
이 샤넬백을 '신한지주 주식'이라고 하면 딱 지금 신한지주가 처한 상황이다. 심지어 배당까지 준다고 한다.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해야 하니 미리 돈을 조달해 놓아야 한다"고 할 때는 언제고?
증자 목적 불분명…결국 우호주주 관리와 주가관리 해석 나와
2년 전 신한지주의 '이해 되지 않는 증자'가 단행될 당시. 시장 일각에서는 "저렇게 증자해놓고는 얼마 있다가 주주 환원이랍시고 배당을 주거나, 자사주를 매입하지는 않겠지. 정말 그건 바보짓"이라는 논평이 나오기도 했다. 돈 끌어다 놓고는 그 돈을 쓰지 않고 되레 퍼주는 형국이기 때문. 그런데 그 '설마'하던 일이 현실이 됐다.
정말 주주가치 제고가 필요하다면 평소에 주가를 관리해야 했다. 하지만 그간 신한지주 주가 수준은 처참했다. 조용병 회장이 취임한 2017년 4만8350원이었던 신한지주 주가는 5년이 지난 현재 3만원대에 머물러있다. 배당을 감안한 총주주수익률은 -6.6%, 연평균 -1.2%로 주주들은 5년간 계속 손실을 보는 상황이다. (관련기사 : 금융지주사 現 회장 임기 중 주주수익률 '처참'...그나마 KB는 선방)
과거 (2019년) 신한지주로 들어온 FI (IMM PE) 보유 우선주(전환우선주ㆍCPS)의 보통주 전환과 오버행 이슈에 대한 대응이라는 논리도 있다. 그런데 이 논리도 재미있는 것이…이들이 증자에 참여한 가격이 2020년 증자에 참여한 다른 FI(베어링ㆍ어피너티)보다 월등히 높다. 똑같은 FI인데 2019년 FI는 산한지주 주식을 비싸게 샀고 2020년 FI는 싸게 샀다.
그러니 오버행 이슈 막음이라고 설명해본들, 기존 FI 주식이 시장에 나오는 걸 막으려고 다른 FI를 끌어들이고, 그 돈을 가만히 두면서 이제 다시 자사주를 사준다는...뭔가 앞뒤가 안맞는 결론으로 흐르게 된다.
이런 혼선과 황당한 자본활용 논리가 벌어진 이유는 간단하다. 2020년 '증자'의 이유가 시장에서 보기에는 불명확해서다.
당시 신한은행 국제부ㆍ카자흐스탄법인장ㆍ글로벌사업본부장을 지냈다가 은행 본부장 3년 차에 지주 CFO로 파격발탁됐던 노용훈 신한지주 부사장(재무부문장, CFO)이 이 거래를 담당했다. 올해 초 신한카드 경영지원그룹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이 바통을 은행 글로벌전략부장ㆍ신한베트남은행 법인장을 지낸 이태경 부사장이 CFO를 맡아 '증자 뒤 자사주매입소각ㆍ배당'이라는 이해되지 않는 자본활용법을 이어 가는 중이다.
어찌 보면 너무나 뻔한 '불합리'에도 불구, 이를 굳이 단행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는 추측도 나온다.
2020년 증자 당시에도 "증자 목적이 우군이 될 새로운 주주확보"라는 해석이 나왔다. 당시에도 신한지주는 이런 해석을 철저히 부인했고, 지금도 여전히 반박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그런 반박이 합리성을 가지려면 말 많았던 1조원의 증자에 대해 2년간 그럴싸한 용도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게 빠졌다.
덕분에 지금 신한지주의 '반값세일' 초청을 받아 증자에 참여한 FI들은 확정 수익을 기대 중이다. 당연히 사외이사 추천자리를 몇 개 받았고 이 과정에서 신한지주 사외이사 자리는 늘어났다. 이들이 이사회에서 누구에게 우호적인 행동을 취할지는 너무나 쉽게 예상이 된다. 따져보면 일련의 과정에서 신한지주 이사회가 제 역할을 하는지도 의구심이 생긴다. 앞뒤가 맞지 않는 증자나 자사주 소각을 그대로 승인해 왔다. 결국 '거수기'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조용병 회장의 임기가 내년 3월이면 만료가 될 시기가 왔다. 내부적으로는 계열사 대표들의 거취문제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상황이다. 이달 13~14일 IMF-WB 연차총회 참석으로 시작될 각 금융지주사 회장의 해외순방도 결국 글로벌 주주들을 대상으로 한 설득작업이 주력이 될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다. (관련기사 : 4대지주 회장 10월 일제히 해외서 주주 만난다...IMFㆍWB 총회 참석차 )
신한지주 주가가 여전히 높지 않았으니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 확대' 발표는 당연히 예상된 수순이었다. 그리고 마치 예정됐다는 듯…신한은 증자했다가, 자사주를 사오고 배당을 늘리는 황당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주주가치 제고'를 설파하면서.
신한지주는 이 와중에 영구채는 또 수천억원을 찍어가면서 '자본확충'을 이어가는 중이다. 주가는 올려야겠으니 자사주는 사준다면서, 자본은 필요하니 후순위채를 발행한다. 현재로선 신한지주의 자본확충 혹은 자본활용 방안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